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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형성이 신의 영역이라는 건 일본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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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디어제주
  • 승인 2017.06.1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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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거짓투성이 설문대할망 신화 <6> 본론(本論) ⑤

구전으로 전해져온 ‘설문대할망’을 제주 창조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제주지역 학계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이처럼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신화로 만들어가는 데 대해 관련 전공자인 장성철씨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취지의 반론적 성격의 글이다. 실제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현승환 교수도 지난 2012년 ‘설문대할망 설화 재고’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연재 기고를 통해 설문대할망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7. 설문대할망 신화관 건립 논거에 대한 검토 ③

 

7.1. 「선문대할망과 異稱들」(2010년)

 

7.1.1. 위 글의 주요 내용 : ⑴ “曼姑(만고)는 麻姑(마고)와 음이 유사한 것으로 보아 마고처럼 여신을 존칭할 때에 사용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3쪽) ⑵ “마고는 ‘청태산 마고할미’라고 전하는 중국 도교 신선의 이름이 민간에서 관용되어온 것으로 여겨지는데(주: 장주근 『풀어쓴 한국의 신화』, 집문당, 2000, 19쪽) ….”(3쪽) ⑶ “曼姑 곧 마고할미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선문대 할망’ 역시 마고 이야기의 한 유형이 아닌가 한다.”(3쪽)

 

7.1.2. 위 ⑴에 대해서 : 曼姑는 ‘사만두고(沙曼頭姑), 설만두고(雪曼頭姑)’(곧 ‘설문대할망’)의 약칭이고, 麻姑는 ‘중국 도교 선녀(18세 가량)’의 호칭이니, ⑴은 뚱딴지같은 소리다.

 

위 ⑵에 대해서 : 『도교의 신과 신선 이야기』(窪德忠, 2004, 뿌리와이파리, 143-144쪽)에, “선녀 마고는 손톱이 새의 발톱과 닮아서인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서왕모[『산해경(山海經)』 2권에, 玉山(옥산)에 사는 서왕모(西王母)는 사람 형상을 하고 있지만 표범 꼬리가 달려 있고, 이는 호랑이처럼 날카롭고, 풀어헤친 머리에는 옥으로 만든 비녀를 꽂고 있고, 큰소리를 잘 치고, 天災(천재)와 五刑(오형)을 담당한다고 씌어 있는데 (중략) 南仙(남선)을 담당하는 東王父(동왕부)에 호응하여 女仙(여선)을 지배했다]로 오인되기도 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렇다면, ‘마고할미’에서의 ‘마고-’는 ‘마고라는 이름’을, ‘-할미’는 ‘서왕모 이미지’를 본뜬 것이리라. 이는 ‘마고할미’는 실은 마고도 서왕모도 아니라 ‘한반도 민중의 소산’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한편, 중국에 ‘천태산’(天台山 : 중국 도교 발상지)은 있어도 ‘청태산’은 없다. 참, 중국 도교는 한말(漢末)에 천태산에서 성립된 연후에 중국 각처와 한반도로, 동중국해를 건너 유구(琉球)와 왜(倭)로, 그리고 흑조(黑潮, the Kuroshio Current)에 실려 탐라로 전파되었다.

 

위 ⑶에 대해서 : ⑶은 ‘설문대할망은 한반도 마고할미가 탐라로 전래되어 토착화한 것이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주장(가설)이 정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양자(설문대할망 · 마고할미)의 자의(字義)가 동일 근원에 닿아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아울러, “이민족 간의 유사한 설화가 전파(이동)에 의한 것인지 자생적인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라는 ‘구비문학 설화이론’을 잠재울 수 있는 논리도 제시해야 한다. 탐라와 한반도는 엄연한 이민족이니까. 즉, 신(神)이 탐라에서는 용출종지(聳出從地)로, 한반도에서는 강림(降臨)이나 난생(卵生)으로 출현하니까.

 

생각건대, 탐라 토박이들의 ⑶에 대한 기정사실화는 어쩌면 제주인(구제받아야 할 고을의 주민)의 고질이 된 노예근성(한반도에 무작정 추종하는 성향)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제주인, 아니, 탐라인은 앵무새처럼 굴지 말고 자기 목소리로 자기 노래를 해야 한다. 예컨대, 탐라 후예는 모름지기 ‘한국의 뿌리는 셋(탐라·한·고조선)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의 ⑴·⑵·⑶은 실은 다 ‘장주근 견해’를 답습(踏襲)한 것일 따름이다.

 

7.1.3. ‘설문대할망 설화 본문’과 ‘설문대할망 자의(字義)’에 대한 해석다운 해석이 없다.

 

7.2. 『풀어쓴 한국의 신화』(장주근, 1998년)

 

위 책은 『한국의 신화』(1961년)의 개정판이다. 생각건대, 이 두 권의 책은 작금의 설문대할망 신화론자들이 흡사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이 책들의 전철(왜곡·오류·논리 비약 등)마저 그대로 밟고 있는 실정이다. 여하튼, 그들이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중언부언(重言復言)을 피하기 위해 여기서는 가급적 논외(論外)로 한다.

 

7.2.1. 위 글의 주요 내용 : ⑴ 선문데할망의 뜻과 어원은 미상(未詳)이다.(15쪽) ⑵ ≪증보탐라지≫(1954년)에 ‘설만두고(雪慢頭姑)’라는 한자표기가 있다.(16쪽) ⑶ <표해록>(1771년)에 처음으로 선문데할망 이름이 보인다.(16쪽) ⑷ 선문데할망 신화는 민담(예: 우도 분리담)으로 변이(變異)되기도 했다.(16쪽) ⑸ “거인설화는 세계 도처에 있다. (중략) 국토 창성을 한다는 점에서는 선문데할망이나 마고할미와 다이다라보오시 설화들이 (중략) 동일계(同一系) 설화임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고래(古來)의 공유재산이었음도 또한 의심할 수가 없다.”(23-24쪽)

 

7.2.2. 위 ⑴·⑵·⑶·⑷에 대해서 : ⑴의 단언(斷言) 탓에 장주근 후학들은 설문대할망 자의 풀이를 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⑵에 앞서 ‘사만두고(沙曼頭姑)’[『탐라지 초본』, 이원조, 1843년경]가 있다. ‘사만두고’와 ‘설만두고’는 설문대할망 자의 풀이를 위한 한 쌍의 열쇠다. ⑶도(전술함) ⑷도(후술함) 허언(虛言)이다. 이 허언들을 장주근 후학들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위 ⑸에 대해서 : 거인설화는 세계 도처에? 생각건대, 지난날 탐라인도 왜인(倭人)도 음식 먹고 대소변 보고 돌 쌓고 땅 파고 흙 나르고 물장난 치고 땅에 발자국 남기고, 그리고 삶의 악조건을 극복하려고 날개(날짐승) 꿈도 거인 꿈도 꾸었다. 이는 인간의 삶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비슷비슷하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세계 도처의 거인설화는 인간 보편성에 기인한 것인 셈이다. 그러니, 설문대할망(탐라) · 마고할미(한반도) · 다이다라보오시(일본) 등이 유사한 것은 당연지사다. / 동일계 설화? 그런데 이 삼자(三者)가 정말 유사할까? 그럼, 일단 본문을 들여다보자. 설화는 문학이고, 문학은 본문에 의해 판명되는 학문이니까. 본문에 의하면, 설문대할망은 여타와는 달리 물(물장오리)에 빠져죽는다. 물론 죽음(좌절 중의 좌절)은 설화이론과 탐라설화체계에 의하면 전설 속성이다. 그렇다면, 설문대할망과 여타는 유사하기는커녕 상이한 것인 셈이다. / 고래의 공유재산? 이는 한국 · 일본 민족은 뿌리가 본디 하나라는 말이다. 아니, 왜 상이한 설화들을 유사하다고 억지 부려 가며 이런 견해를 피력할까? / 국토 창성? 이것의 전모(全貌)는 ‘지형 형성은 본래 신의 영역이니, 국토 형성(국토 창성, 국토 끌기, 국토 분리)도 신의 영역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 논리지 탐라 논리가 아니다. 탐라 논리는 당해(當該) 지형이 ‘특정의 개별적 증거물’이면 전설로, ‘포괄적 증거물’이면 신화로 분류하는 것이다. / 여하튼, 위 글은 탐라설화를 일본 논리로 재단(裁斷)하고 있다. 왜? 모계중심사회 신화가 필요해서? 설마 의식이 일제 식민 치하에 여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탐라 땅이 아직도 ‘자의 그대로의 제주’(한반도 구제를 받아야 할 고을)로 여겨져서는 아니리라.

 

 

<프로필>
- 국어국문학, 신학 전공
- 저서 『耽羅說話理解』, 『모라(毛羅)와 을나(乙那)』(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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