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02:42 (토)
좌절금지
좌절금지
  • 홍기확
  • 승인 2016.11.01 09: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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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132>

 도전한다는 건 응전을 예정하는 개념이다. 경쟁을 한다는 것은 좌절이 포함된 의미다. 승부를 한다는 것은 패배를 노정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측치 못한’ 응전, 좌절, 패배에 타격을 입는다. 예측치 못할 수도 있지만 시기의 문제지 언제나 반대의 개념은 함께 따라온다. 앞모습만 보며 가려진 뒷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뒤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교육자 존 A. 셰드는 말했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가 만들어진 목적은 아니다.”

 옳은 얘기다. 아무리 멋진 배라도 바다에 나가 있어야 진가가 드러난다. 고기잡이배는 고기를 잡고, 크루즈 선은 관광객에게 기쁨을 주고, 유조선은 석유를 담아 망망대해로 떠나야 한다. 물론 바다에는 위험이 도사린다. 하지만 모험을 해야 한다. 모험을 하지 않는 정박한 배는 탄생의 목적을 잃은 영혼 없는 고철에 불과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어느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으면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 세상에 있는 목적이 아니다. 역동적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며 사소한 모험을 해야 한다. 때로는 관혼상제(冠婚喪祭)라는 큰 모험도 해야 함은 물론이다.

 최근 전국에서 개최하는 밴드 경연대회에 참가했다. 3차 본선까지 있는 대회에서 1차를 통과하고, 2차 경연 차 경주로 밴드 멤버들과 향했다.

 경연시간. 무수한 경쟁자들과 심사위원들이 보는 앞에서 나는 드럼의 박자를 놓쳤다. 당황하자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 노래가 5초 이상 어긋난 채로 진행이 되었다. 쓴웃음이 절로 났다. 심사위원은 공연이 끝나자 혹평했다. ‘박자가 유체이탈 하셨네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멤버들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내가 잔치를 망친 것이다.

 여느 나약한 인간의 소소한 대응처럼 삼일 연속으로 술을 마셨다. 사전에만 있는 단어인 좌절을, 그야말로 몇 년 만에 사전적 의미인 ‘마음이나 기운이 꺾임’ 그대로 느꼈다.

 최근 이렇다 할 위기 없이 승승장구하던 나에게 찾아온 낯선 감정은, 안 쓰던 근육을 쓰고 난 다음날처럼 머릿속을 뻣뻣하게 만들었다.

확실히 책을 읽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책에는 좋은 말이 대부분이고 쓴 소리는 적어 이들을 선별해 줍는 습득(拾得)을 하면 된다. 반면 직접 경험은 감동보다는 쓰라림이 많다. 몸으로 받아들여 체득(體得)해야 한다. 습득은 취사선택이 가능하지만, 체득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온 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매번 잘 매던 안전벨트를 안 매서 범칙금을 내면 일 년 간 잘 매고 다닌다. 걸리지 않던 불법주정차에 적발되면, 몇 년간 주차장에 제대로 세운다. 이렇게 적발 때의 속상함은 범칙금을 납부할 때쯤은 어느새 사라지고 교훈을 얻는다.

 쓴웃음이 허탈한 웃음으로 바뀌고 있다.

 세상이 말한다. ‘제대로 걸렸네.’

 나를 돌아봤다. ‘잘 걸렸다.’

 겸손을 배웠다. ‘아직 멀었구나.’

 전인권의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듣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정일품초긍정영의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정팔품긍정면서기쯤은 되는 나다. 육지의 끝은 끝이 아니다. 바다의 시작이다.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 그 때 그 때의 그때가 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외계인, 파충류, 석가모니 등 아님)이다. 내상을 입고 주화입마에 빠져 운기조식 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운기조식이 끝나면 닷줄을 풀고 다시 출항할 것이다. 좌절금지라는 비전과 내가 태어난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서다.

 세상에 삐졌지만, 좌절에 빠지진 않았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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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9 11:45:54
새로운 출항을 응원합니다.